2006년경 소수 그룹을 위한 단문 메시지 시스템으로서 출발한 트위터는, 어느새 온라인 정보의 공유와 전파 방법을 극적으로 바꾼 강력한 의사 소통 도구로 진화하게 되었습니다. 트위터는 군중에 의해 움직이는 트렌드의 지표가 되었고, 뉴스 기관보다 훨씬 더 빨리 속보를 전해주는 정보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트위터는 사람들이 연합하고 협력할 수 있는 도구이기도 했습니다. 이를 보여주는 한 예가 2011년 봄 아랍에서 있었던 군부 독재에 대한 시위와 저항으로 사람들은 이를 두고 "트위터 혁명(Twitter Revolution)"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혹시 이러한 트위터의 역사에 대해 흥미가 있으시다면, 계속해서 나머지 이야기도 읽어 보셨으면 합니다.

 

 

트위터의 탄생

 

때는 2006년으로, 트위터의 설립자가 된 사람들은 당시 오데오(Odeo, Inc)라고 불리는 샌프란시스코 소재의 팟캐스팅 서비스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트위터가 설립되기 1년전에 설립된 신생 회사였지요. 그 회사는 다른 주요 회사들과의 경쟁에 고군분투하고 있었고 혁신을 따라잡아야만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그들은 자신들을 새롭게 변화시키기 위해서 "해커톤(Hackathon)"이나 혹은 "하루 종일 이어지는 브레인스토밍 시간"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모든 사람은 각각 소규모 그룹의 팀을 만들어 활동 했습니다.

 

 

여기서 잭 도시(Jack Dorsey) 또한 이러한 작은 그룹 중 하나에 속한 일원이었습니다. 토의 중 그는 한 가지 제안을 하게 되는데 그의 초기 제안은 이러했습니다. 작은 그룹의 팀들이 서로 자신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공유할 수 있도록 SMS(휴대폰 단문 문자 메시지) 기반 서비스를 만들자는 거였지요. 2006년 당시 공용 와이파이(Wi-Fi), 스마트폰, 모바일 인터넷은 아직 대중화되기 이전이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SMS 문자 메시지 서비스의 경우 (이전과 달리) 돌파구를 찾아 요금이 매우 쓸만한 적정 수준이 된 상태였습니다. 덕분에 이동 중일때, 젊은 사람들은 주로 문자 메시지를 사용해 하고 싶은말을 주고 받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잭의 제안은 즉시 열렬한 환호를 받았습니다.

 

그 뒤 잭 도시(Jack Dorsey), 비즈 스톤(Biz Stone), 그리고 플로리안 웨버(Florian Weber)는 잭이 제시했던 아이디어를 실제로 한 번 만들어 보라는 요청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2006년 3월 21일, SMS 연동 서비스의 최초 버전인 0.1 버전이 실제로 만들어 지게 됩니다. 최초 버전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웹 기반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노아 글래스(Noah Glass)라는 사람이 관리를 맡게 됩니다.

여러달 동안, "twttr"란 코드네임을 가진 이 프로젝트는 사내 "일급 기밀"로서 조용히 진행되었으며 덕분에 맹렬한 경쟁사들의 레이더망을 아슬하게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개발이 진척되어 Twttr 클로즈드 베타테스트가 소수 인원의 초대하에 이뤄졌고, 마침내 2006년 7월 15일 Twttr.com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Twitter.com 도메인이 성공적으로 인수된 덕분에 Twttr란 이름을 가졌던 이 서비스는 지금과 같은 "Twitter"로 이름이 바뀌게 됩니다.

 

이 당시 초창기만 해도 트위터에는 글자수 제한이 없었다고 합니다. 장문의 메시지가 입력될 경우 여러 차례에 걸쳐서 다수의 문자 메시지가 상대의 휴대폰으로 전송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와는 달리, 미국에서는 문자 메시지를 "수신"할때에도 "요금이 부과" 되었다고 합니다. 메시지를 길게 보내는 사람이 있다면 요금 폭탄을 맞을 수 밖에 없겠지요. 이 때문에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뒤, 문자 메시지의 최대 글자수 제한(160자)을 넘지 않도록 입력 가능한 글자수에 제한이 생겼다고 합니다. 트위터의 고유한 특성이자 재미인 글자수 제한이 이때 생겼던 것이지요. 그렇다면 왜 입력 가능한 최대 글자수를 SMS의 최대 글자수인 160자가 아닌 지금의 "140자"로 결정하게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사용자 이름과 콜론이 들어갈 자리가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하는군요. (20자)

 

2007년 2월 8일, 트위터의 개념을 맨 처음 제시했던 잭 도시(Jack Dorsey)는 이런말을 남겼습니다.

누군가는 140자의 글자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One could change the world with one hundred and forty characters

당시만 해도 아마 그의 예상이 실제 사실이 될거라고는 그 어느 누구도 짐작 조차 하지 못했을 겁니다.

 

트위터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좀 더 상세하게 알고 싶으신 분은, 트위터의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인 돔 사골라(Dom Sagolla)가 운영중인 웹사이트(140 Characters)에서 "How Twitter Was Born(트위터는 어떻게 탄생했는가)"이란 글을 통해 살펴 보실 수 있습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지가 작성한 "The Real History Of Twitter(트위터의 실제 역사)"를 통해서도 트위터 탄생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잭이 가진 아이디어의 기원

 

그렇다면 트위터를 제시한 잭의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온것일까요? 이후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그 아이디어는 "상상"을 통해 나온 "즉흥적인 결과물"이 아니었습니다. 잭이 여러해 동안 계속해서 생각하고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거대한 개념이었습니다.

 

잭은 도시가 동작하는 방식, 재화와 정보가 흘러가는 방식, 그리고 모든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그 방식에 크게 매료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화물을 운송하는 트럭 운반 차량처럼 경로를 추적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그는 도시에서 일어나는 모든것들을 추적하고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것이 무엇인지 볼 수 있도록 해주는 그런 소프트웨어를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잭은 문득 평범한 사람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리고 고민을 거듭하게 됩니다. 고민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잭은 인스턴트 메신저를 보고 앞서 도시를 보며 떠올렸던 아이디어들을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을것이란 생각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리고 실제로 뭔가를 만들어 보려 합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인터넷 연결을 가진 휴대용 기기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공유될 수 있는 메시지의 종류는 고정된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글을 올린 사람들의 것으로 제한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잭은 언제 어디에서라도 서비스에 메시지를 작성할 수 있는 무언가를 원했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작은 이메일 기기인 RIM 850(블랙베리의 전신)을 위한 앱을 개발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개발한 앱을 사용하기 위해선 상대방 역시 그 기기를 가지고 있어야 했기 때문에 역시나 메시지의 종류나 접근 대상이 제한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5년여의 시간이 흐른 2005년, 미국에서 문자 메시지(SMS)가 인기를 얻기 시작하자 잭은 (어떤 휴대폰에서든 손쉽게 사용할 수 있으므로) 자신의 아이디어가 실현될 시기가 오게 되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최초 컨셉의 디자인

 

아랫쪽의 스케치는 2000년이나 혹은 2001년경 잭이 자신이 꿈꾸고 있던 메시지 교환 서비스의 최초 디자인을 그린 것입니다.

 

 

스크린샷을 보시면 마우스 커서가 그려진 오른쪽 하단부에 작은 원형으로 두 개의 눈이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눈은 사람들이 다른 사용자의 활동을 "볼 수 있도록(Watch)"하는 링크 였으며, 이후에 다른 사람들을 따라간다는 의미에서 "팔로우(Follow)"로 명칭이 변경되게 됩니다.

 

잭은 트위터가 다른 사람 자체를 볼 수 있게 해준다기 보단, 그 사람이 생성한 무언가를 볼 수 있도록 해준다 라는 이야기를 한적이 있는데 잭이 말한것처럼 트위터는 페이스북과 달리 사람(혹은 그 관계) 자체에 집중했다기 보단 "정보"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집중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 트위터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사회적 관계를 연결시켜주는 서비스)" 로 바라보기 보다는, 전세계 모든 사람들의 생각과 지식, 정보가 저장된 하나의 거대한 데이터베이스(DB)라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자유롭게 접근 할 수 있는 거대한 데이터베이스 말이지요. 이를테면, 특정 국가의 국민들이 느끼는 주된 정서가 무엇인지 통계를 내보고 싶다면 이렇게 해볼수도 있을겁니다. "슬프다(Sad)", "기쁘다(Happy)", "화가난다(Angry)"와 같은 특정 감정 상태를 나타내는 주요 키워드들을 선정하고 이 단어들이 반복되는 총 횟수를 세서 서로 비교함으로서 어떤 감정을 주로 느끼는지 가늠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트위터(Twitter) 이름의 유래

 

이전에 나왔던 사진의 잭이 그린 스케치에 나와있는 것처럼, 트위터의 초기 이름은 Status(지금 상황) 였습니다.

이러했던 이름이 어떻게 "트위터(Twitter)"가 됐을까요. 트위터 이름의 유래에는 아래와 같이 몇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잭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함께 작업했던 팀은 "친구의 주머니를 윙윙 울리도록 진동시키고 있다는 그 느낌"을 확실하게 담아낼 수 있는 그런 단어를 이름으로 원했다고 합니다. 메시지가 새로 왔을때 폰이 만들어 내는 그 진동을 반영할 수 있는 단어를 말이지요. 그렇게 해서 맨 처음으로 나온 단어가 "Twitch(씰룩거리다, 경련하다)" 였다고 합니다. 읽어보니 "트위치"라고 발음되는군요. 그런데 읽어볼 수록 표현하고자 했던바와 단어 사이의 연결이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트위치(Twitch)"와 유사한 단어를 사전에서 찾기 시작했고 그렇게 해서 우연히 발견하게된 단어가 "트위터(Twitter)" 였다고 합니다.

 

노아 글래스는 맨 처음 정했던 프로젝트 코드네임 Twttr에 맞추기 위해 찾은 단어가 Twitter 였다고 주장하고, 돔 사골라는 Flickr에 의해 영감을 받아 이름을 짓게 되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혹시 "트위터(Twitter)"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 계신지요?

이미 알고 계신분이 많으시리라 생각 합니다만, 혹시나 싶어 남겨 봅니다.

트위터를 영어 단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새가) 지저귀다. [짹쨱거리다]라는 의미가 나옵니다.

새처럼 쉴새없이 이야기하며 재잘대는 모습을 떠올리게 하지 않습니까. ^^;

 

잭이 어떻게 트위터를 공동 개발하게 되었는지 그 전체 이야기와 완전한 스토리를 알고 싶은신 분은 그의 2009년도 로스엔젤레스 타임즈(Los Angeles Times) 인터뷰를 읽어 보시면 됩니다.

 

트위터를 최초로 사용한 140인의 명단도 함께 한 번 살펴 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아래쪽에 링크를 첨부하도록 하겠습니다.

트위터를 최초로 사용한 140인의 명단

 

 

결론

 

성공적인 프로젝트에 관한 다른 수 많은 이야기들처럼, 트위터의 이 이야기도 3가지의 큰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1. 훌륭하고 멋진 아이디어도 번창할 수 있는 알맞은 환경을 찾기 까지는 수 년이 걸릴 수 있다. 아이디어를 포기하지 말고, 그것들과 함께 즐기고 놀면서, 적합한 시기가 올때까지 계속해야 한다.
  2. 가장 훌륭한 아이디어 조차도 생명을 얻기 위해선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자신의 힘만으론 불가능 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이해하고 실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사람들을 찾아보자.
  3. 초기 아이디어를 실제로 옮기기 전에 프로토타입(기능 시험 버전)을 만들어 보는것이 도움이 된다. 첫번째 프로토타입(시험 버전)이 동작되지 않는다로 하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시도와 실패를 거듭하면서 계속해 나가자.

 

혹은 어려움을 모두 다같이 함께 할 수도 있겠지요.

역시 제일 중요한건 이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 여건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것"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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