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非)日常5

그렇게 우리 네 사람은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

평소와 다름없는 또 다른 오후의 시작인 것이다.

자. 이제 다시 작업으로 돌아가 볼까.

 

음. 컴퓨터는 무사히 잘 있는것 같군.

나머지 세 사람도 벌써 각자의 컴퓨터앞에 자리 잡고 앉은것 같다. 이제 절전 모드에서 컴퓨터를 다시 깨워볼까.

 

습관적으로 전원 버튼위에 손을 올려놓고 누르려던 순간이었다. 그래,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사무실 윗쪽, 그러니까 천장에 달려있는 형광등 불이 '픽-'하고 나가 버렸다.

무슨일인지 영문을 몰랐지만 이때가지만 해도 난 이렇게 생각했다.

아. 형광등이 다됐구나. 이거 내가 갈아야 하는건가. 상당히 귀찮구만..

 

그런데 그게 아니였다.

내 자리 윗쪽만 불빛이 사라진게 아니고 다른 사람의 자리도 어두컴컴하게 변해있었다.

혹시나 싶어 눈길을 돌려 살펴봤지만, 대범이, 형준이, 지민이의 자리도 어둑해져 있었다.

 

"뭐지, 이게. 갑자기 정전인가?"

"이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 단 한 번도 정전 같은건 없었는데 말이죠. 이게 대체 무슨일이죠?"

"아마 우리 사무실쪽만 전기가 나간게 아닐까요?"

 

사무실안이 점점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충분히 그럴만했다. 애초에 전기가 '완전히, 남김없이' 나가버려서 불도 켜지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컴퓨터 전원도 안들어왔다.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업무는 순식간에 마비됐다.

미뤄둔 작업이 있었던 사람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어찌할바를 몰라했다.

 

당황한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대체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거지?

 

사무실 사람들은 하나, 둘 상황을 살피기 위해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 일행중에는 나와 대범, 형준, 지민이가 포함되어 있었다.

 

설마했는데 역시나였다.

우리 개발실뿐만 아니라 옆 사무실, 그리고 옆 사무실에 옆 사무실까지..

모든 사무실이 컴컴하게 변해있었다.

 

이윽고 건물을 돌아다본 우리들은 건물 전체가 정전이었음을 알게 되었고

밖으로 나온 뒤에는 비로소 이 일대 전체가 정전임을 알게 되었다.

 

그 때가 오후 4시를 좀 넘은 시점이었다.

이 일대엔 높은 건물이 많을뿐만 아니라, 이 시간대엔 햇빛이 잘 들지 않기 때문에

아직 저녁 시간이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주위가 상당히 어둡게 보였다.

벌써 저녁 시간이 된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형준이가 말했다.

"음? 여기 다 정전된건가? 이건 상당히 드문일인것 같은데."

 

대범이가 이어서 말했다.

"누가 다른 사람한테 전화 좀 해봐. 이거 어떻게 된건지 모르겠네."

 

마지막으로 내가 말했다.

"그럼 내가 한 번 친구한테 전화해 볼께. 잠시만 기다려봐."

 

폰을 들고 다른 회사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음? 그런데 신호가 가질 않는다. 무슨일이지? 전화까지 끊긴건가? 영문을 모르겠군.

 

주위는 서서히 주변을 보러 몰려든 사람들로 시끄러워지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가운데 서성이는 사람들. 분위기 참 묘하군.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새로운 휴가가 시작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라는 농담이 나올법도 했지만,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잠시뒤 겨우 친구와 전화가 연결됐다.

"여어. 이쪽은 일대가 완전히 정전됐어. 네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다른 지역에 있었지? 혹시나 싶어서 물어 보는건데 말이야. 그럴리는 없겠지만, 그쪽은 어떻지?"

 

잠시뒤 수화기에서 되돌아온 말.

"음? 이런. 이쪽도 완전히 정전이야. 일대가 완전 마비됐어. 너, 이거 알고있냐? 대로로 나가보니 신호등하고 다른 교통 기기도 완전 마비됐어. 지금 교통 경찰이 나와서 수신호로 교통을 정리하고 있어. 네가 있는 지역도 완전히 정전된거냐? 이런 말도 안돼는!"

 

듣고나서 직감했다.

이건 보통 상황이 아니다.

분명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것이다.

 

설마, 다른 지역도 정전인건가?

윗쪽에서 내려온건 아니겠지?

전쟁이라도 시작된건 아닐까?

아님, 중국? 일본? 이제 인류 종말이 시작되는건가?

 

...일리가 없잖아.

어수선한 분위기속에 머무르니 별의별 생각이 다든다.

물론, 주위의 시끄러움은 시간이 갈수록 사그러들고 있었다.

다들 지쳐가고 있는거겠지.

 

잠시뒤 옆 사무실의 동현이가 폰의 DMB를 켠 덕분에 뉴스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현 상황이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알 수 있었다.

 

"오늘 오후 3시경, 무더위로 갑작스럽게 전기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전력거래소와 한전에 의해 순환 단전이 시작되었습니다. 김기현 기자 나오겠습니다. 김기현 기자?...."

 

뉴스를 보니 이제 상황이 좀 이해가 간다.

그러니까, 대략 전력 사용량이 예상치를 상회하는 바람에 전력거래소에서 단전을 결정했고

한전에서 순환 단전을 시행했다는건데.. 이 자식들, 제 정신인가? 이게 대체 뭔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 뿐이다. 무심코 '지금 장난자는 겁니까?'라고 말할뻔 했을 정도였다.

 

이제사 주변 분위기도 진정되어 가는것 같다.

아마, 사람들도 각자의 방법으로 정보를 얻어 현 상황을 타개해 나가는 거겠지. 아니, 적응이 맞을려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리 일행은, 각자 흩어져서 남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저녁 시간 퇴근전, 개발실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말이다.

 

그 때였다.

평소 근처 자리에 앉는 미진이와 삼총사가 나타났다.

태풍처럼 시끌벅적하게 내 주위로 다가왔는데, 근처로 다가온 미진은 예고도 없이 차가운 커피 두 캔을 내 볼에 가져다댔다.

 

"앗, 차가워!"

순간 나도 모르게 소릴 질렀다.

그리고 당황스러웠다.

 

당황스러워하는 나를, 재밌다는 눈으로 쳐다본 미진이는

볼에 가져다댄 캔을 잽싸게 때어내며 이렇게 말했다.

"얍, 냉기공격!"

 

어안이 벙벙해진다.

 

잠시뒤 미진이는,

"히힛. 효과가 꽤 있었나 보구나. 날도 더운데.. 시원하지? 그럼 나중에 또 보자!"

라고 말하곤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언제나처럼, 그 수다쟁이 삼총사와 함께.

떠나간 자리, 내 손위에는 커피 한 캔이 남아있었다.

어안이 벙벙했는데.. 오히려 이제사 정신이 좀 든다.

미진이는 무슨 볼일이 있었던거지. 음. 어디 놀러갈 작정이었나. 이 상황에서?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커피 하나만은 정말로 고맙다. 왠지 기분이 좋은것 같다. 귀여운 그녀가 남기고간 선물이라서 그런걸까.

아직도 소녀같은 구석이 있다.

 

음음.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었던, ...

아니 평소와는 조금 다른 (비)일상이 펼쳐졌던 하루가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는, 이 커피 한 캔을 마시며 여유롭게 생각해 볼까나.

 

 

* 추신:

이해를 돕기위해서 사진 하나를 가볍게 첨부해 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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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스윈

서지스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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